TODAY 2018년2월19일 月曜日

우리 시대 마지막 주막, 삼강주막

190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… ‘술 유산’

기사작성 01-29 리쿼코리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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故유옥연 할머니 50년간 酒母로 살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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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곳에서 유옥연 할머니는 50년간 주모로 살았다. 지금도 부엌 곳곳에는 할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.

 

삼강주막(三江酒幕)을 얘기할 때 먼저 듣게 되는 이름이 유옥연 할머니다. 우리 시대의 마지막 주막에 마지막 주모(酒母)이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. 삼강주막엔 아직도 할머니의 흔적들이 이곳저곳에 남아있다. 2005년 90세의 일기로 이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50년을 주모로 살다갔으니 그럴 법도 하다.

 

주막의 부엌 벽면 여기저기에는 길고 짧은 선(線)들이 그어져 있다. 세로로 짧게 그은 선은 막걸리 한 사발, 길게 그었으면 한 되라고 한다. 할머니만의 외상 표기법이다. 길고 짧은 세로 선들 중앙에 가로로 길게 쭉 그어놓으면 다 갚았음을 뜻한다. 뱃사공들이나 지나는 사람들이 오며가며 막걸리를 공(空)으로 들이킬 적마다 글을 몰랐던 할머니는 벽에다 선을 하나씩 그었다. 할머니에게 이 벽면은 한 마디로 ‘외상장부’였던 셈이다.

 

부엌의 북쪽 벽은 뱃사공, 동쪽 벽은 동편에서, 서쪽과 남쪽 벽은 서편과 남편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외상장부로 활용했다. 동서남북 외상 줄이 한두 개가 아닌데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누구의 외상 줄인지 다 꿰고 있었다고 한다. 허나 그마저도 단순한 표기일 뿐, 실제 돈을 꼭 받으려고 하진 않았다고 한다. 오히려 배고픈 사람에겐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상을 내어주고, 물고기를 잡아오면 말없이 매운탕을 끓여주었다.

 

할머니는 살아생전 외상값을 다 받지 못했다. 아니, 굳이 받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.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나눔에 인색하지 않았던 할머니는 누구에게라도 내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이다. 그래선지 한 번도 뵌 적 없는 주모 할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, 머리 쓰다듬어주시길 기다리고 싶은지 모르겠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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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강주막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(三江里)에 속한다. 강원도 황지연못에서 발원(發源)하는 낙동강, 경북 봉화에서 발원하는 내성천, 경북 문경 사불산에서 발원하는 금천, 이 세 강이 모이는 곳이라 해서 삼강이라 이름 지어졌다.

 

삼강주막이 몇 년도에 세워졌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. 안내판에도 "1900년경에 지었다"고만 쓰여 있다. 주막에서 몇 걸음 되지 않은 곳에 보부상과 뱃사공 숙소가 있었는데, 79년 전 대홍수 때 모두 사라졌다. 이 두 숙소는 최근 삼강주막이 인기를 끌면서 찾는 발걸음이 많아지자 새롭게 복원해 놓았다. 실제 이곳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.

 

삼강주막은 방 두 칸과 부엌 한 칸으로 돼 있다. 방 두 칸엔 모두 7쪽의 문이 나 있다. 문 바로 앞에서 자는 술꾼을 피해 드나들기 편하도록 배려한 구조다. 부엌에도 문은 4쪽이다. 방이며 마루에 술상을 나르기 편하도록 한 것이다. 당시에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.

 

삼강주막은 현재 삼강리 부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.
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-1 ☎ 054·655·3132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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